오늘은 쿠킹클래스에 참가하는 날.
마이리틀트립을 통해 '하노이 가든 빌라 로즈 키친 쿠킹'이라는 클래스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올드타운에 숙소를 예약한 덕분에 하롱베이투어도, 쿠킹클래스도 다행스럽게 숙소 앞까지 데리러 와주시기로 했다.
올드타운 밖에서 숙박하는 경우는 지정된 장소에서 모인 후, 다 같이 이동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동행하는 내 입장에서는 호텔 픽업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쿠킹클래스에 참가하기 전,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길래 어제 다녀왔던 호텔 앞 카페 Vie Coffee & Tea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https://maps.app.goo.gl/SUNgFuD9PKtnvjGS8
이번에 고른 커피는 루왁(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 배설물), 블랙 아이보리(태국 코끼리 배설물)와 함께 세계 3대 응가커피 중 하나로 꼽히는' 위즐커피(베트남 족제비 배설물)'.
직원분이 커피를 내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괜찮냐고 하길래 얼마나 걸리겠나 싶어 괜찮다고 했는데 거의 15분~2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그 바람에 쿠킹클래스 픽업시간이 가까워져서 7분 만에 커피를 호로록 마시고 출발해야 했다.
난생처음 마셔본 위즐 커피는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와는 상당히 달랐는데 기름이 많고, 뭔가 미끄덩+끈적이는 게 굉장히 독특했다.
거기에 첫 향이 훅하고 강하게 올라왔다가 갑자기 휙 사라지는데 도대체 무슨 향인지 모르겠다.
내 코가 금방 적응을 해버린 건가?
산미는 꽤 있는 편이었다.
호텔 앞으로 쿠킹클래스의 픽업차량이 도착했고, 우리는 차에 올라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우리와 다른 한 커플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양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순서대로 탑승을 마치자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할아버지가 계속 말을 걸어왔다.
특이하게도 여동생과 여동생의 남편과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본인이 사는 지역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기도 했는데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은 미국에서도 연중 따뜻하기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웬일인지 이상기후로 인해 갑자기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다고 했다.
또 여행얘기도 들려주었는데 한 달 동안 여행을 할 예정이라면서 일주일은 캄보디아, 일주일은 태국을 다녀왔고 이번주는 베트남, 다음 주에는 라오스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 부모님보다 연세가 많아 보이시니 못해도 70대는 되실 것 같은데 배낭 하나 들고 젊은 사람들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을 척척 소화해 내시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멋져 보였다.
나도 60대, 70대가 돼도 이렇게 여행할 수 있을까?
풍채 좋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먼 훗날을 위해 미리 체력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할아버지한테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받은 일이다.
사실 한국의 주입식 영어 교육을 나름 성실히 받아온 정도로 결코 잘한다고 할 수 없는 실력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그 칭찬이 기쁘게 느껴졌는데 사실 그 이유 말고도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바로 칭찬이 마냥 기쁘게만 들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왈,
자기가 지금까지 만난 한국인들은 젊은 사람들부터 나이 든 사람들까지 다들 영어를 못했다, 다들 떠듬떠듬 단어만 나열하는 수준이라 대화가 안 된다 등등 같은 한국인으로서 발끈할만한 내용이었다.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그 말을 듣고 살짝 짜증이 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사람마다 영어 실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단정 짓기 어렵다, 실제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한다, 그렇지만 영어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낀 사람은 한국어와 언어체계가 다른 영어를 굳이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미국이 아닌 동남아라 간단한 영어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대답하니 할아버지도 금세 수긍했다.
사실 이렇게 설명하는 나조차도 뛰어난 영어실력이 아니니 할아버지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대화가 일단락되고 난 후, 속이 불편하다는 걸 느꼈다.
동남아 사람들의 거친 운전을 잊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멀미약을 먹여뒀지만 나는 얼마나 걸리겠어 싶어 멀미약을 먹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한 10분이면 이동할 줄 알았는데 30분 가까이 걸리기도 했고, 급하게 출발했다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차 안에 있다 보니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빈 속에 커피까지 먹은 터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며 갔으면 좀 나아졌으련만 영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멀미가 심해진 것 같았다.
여차저차 시장에 도착했지만 내리고 나서도 컨디션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하필 날이 춥고 비까지 많이 내리는 바람에 쿠킹클래스 가이드님이 준비해 준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면서 다녔다.
가이드님과 함께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가르쳐 준 베트남어로 물건을 직접 사보기도 했다.
물론 베트남어는 일회용으로 써먹자마자 그 자리에서 잊어버렸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게 될 장소에 도착했다.
일반 가정집과 연계하여 요리를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시설을 보아하니 가정집이라기보다는 쿠킹클래스를 위해 개조된 모습이었다.
오늘 만들게 될 메뉴는 샐러드와 돼지고기 바베큐를 곁들인 분짜, 넴(튀긴 스프링롤), 에그커피.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휴식 시간을 가졌는데 이미 멀미와 빈 속에 커피 콤보로 반쯤 넋이 나간 나는 결국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물론 먹은 게 없으니 커피만 나왔다는...
겨우겨우 속을 추스르고 설명을 들은 후, 본격적인 쿠킹 타임이 시작되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각자에게 주어진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각자 손질한 재료를 한데 모아 요리를 완성시키고, 순서대로 완성된 요리를 맨 마지막에 테이블에 올려 식사시간을 갖는 식이었다.
만든 음식은 꽤 맛있었다.
샐러드는 태국에서 먹었던 쏨땀과 비슷한 맛이 났다.
스프링롤도 안에 들어갈 소부터 직접 만드니 흥미로웠고, 라이스페이퍼를 말아 형태를 잡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특히 돼지고기 바베큐는 마당에서 바로 구워 먹었는데 좀 타긴 했지만 분짜에 곁들여먹으니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비록 나는 속이 안 좋아 맛만 보는 정도였지만 아이가 맛있다며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는 후식으로 에그커피를 만들었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어제 카페에서 마신 에그커피와 같은 맛이 났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또 속이 안 좋아질 것 같아 위에 거품만 스푼으로 떠서 먹었다.
달짝지근한 게 맛이 좋았다.
아이에게는 에그커피 대신 에그코코아가 주어졌다.
직접 베트남 요리도 만들어보고, 그 요리로 식사까지 마치니 보람찬 시간이었다.
다만 내게 다시 참가할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없다😅
즐거운 요리후기만을 작성하고 싶었지만 사실 아이를 동행하기에는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는 만 5세 이상의 어린이는 어른과 똑같이 단독 참가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결국 칼과 불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 건 부모다.
아이의 칼질을 확인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분량의 칼질을 소화해 내야 했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복병은 영어였다.
쿠킹클래스 가이드님이 영어를 너무 잘했다.
이건 물론 나의 영어 실력 때문😭
가이드님이 베트남 억양 하나 없이 정말 미국인처럼 영어를 술술 하는데 문제는 말이 너무 빨랐다.
나중에 물어보니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미국에서 꽤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쿠킹클래스에 참가한 사람들 중 나와 한 동양인 커플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뉴질랜드 등 영어권 사람들이었고, 동양인 커플마저 싱가포르사람이라 영어 사용이 자유로웠다.
그러니 설명도, 대화도 순식간에 휙휙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내 칼질하면서 아이 칼질 봐주고, 거기에 가이드님 설명을 들어야 하고, 옆에 미국인 아저씨는 계속 말을 걸고...
비록 거의 다 게워내긴 했지만 카페인을 마셔두길 잘했다 싶었다.
또 하필 우리가 쿠킹클래스에 참가한 그날 비도 많이 오고 날이 꽤 추웠다.
쿠킹클래스는 실내에서 진행됐지만 문을 완전히 오픈해 놓은 터라 바깥바람이 안으로 몰아쳤다.
가뜩이나 컨디션도 좋지 않은 나는 몸이 계속 으슬으슬해서 쉬는 시간마다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팀을 두 개로 나누고, 각 팀이 공동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게 되는데 우리 팀은 우리 아이 때문에 고추를 양껏 넣지 못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다.(...)
가이드님이 우리 팀에 아이가 있으니 요리에 매운 향신료를 조금만 넣게 했는데 그럴 때마다 뉴질랜드에서 요리사를 하고 계신다는 참가자의 얼굴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다들 돈과 시간을 쓰며 참가한 것이니 이해는 갔다.
아이는 향신료를 쓰지 않는 바베큐 위주로 식사를 하면 됐기 때문에 같은 팀 참가자들에게 아이 신경 쓰지 말고 향신료를 자유롭게 넣으시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고도 폐를 끼친 것 같아 기분이 영 찜찜했다.
이러한 이유로,
영어가 유창하고, 아이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추천.
나처럼 집중해야 설명을 알아듣는 수준에 아이까지 동반한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너무 마음에 들어 두 번이나 참가했던 방콕의 쿠킹클래스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방콕에서는 비영어권 참가자들이 많아 간단한 영어로 천천히 설명해주기도 했고, 각자 자기가 먹을 요리를 만드는 거라 맵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실내에서 요리를 했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비용적으로도 내용면에서도 알찼다.
방콕 쿠킹클래스의 압승이었다.
하필 방콕의 쿠킹클래스에 참가하고 얼마 안 되어 참가했던 거라 하노이의 쿠킹스쿨에서는 아쉬움이 컸지만 그래도 직접 베트남 요리를 만들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두 시간 동안 뻗어버렸다.
오전부터 늦은 시간까지 진행됐던 하롱베이 일일투어보다 쿠킹클래스에서 보낸 4시간이 더 힘들었다🤣
두 시간 동안 호텔에서 푹 쉬고 난 후, 아이와 나는 하노이 쇼핑의 메카 '롯데마트'로 향했다.
🔽 베트남 하노이 여행기 모아보기
[일정]
첫째 날(1/19) : 오후 7시경 노이하이 공항 도착 - 공항에서 간식(파파이스) - 호텔로 이동 및 체크인
둘째 날(1/20) : 하롱베이 투어 - 저녁식사(THU HUYEN)
셋째 날(1/21) : 카페(Vie Coffee & Tea) - 호치민묘소 - 호치민관저 - 점심식사(땀비) - 탕롱황성 - 기찻길 옆 카페 - 마사지(Kadupul Spa Massage) - 저녁식사(BANH MI LONG HOI) - 호안끼엠호수 산책
넷째 날(1/22) : 카페(Vie Coffee & Tea) - 쿠킹스쿨(하노이 로즈 키친 쿠킹 클래스) - 호텔에서 휴식 - 저녁식사(롯데리아) - 쇼핑(하노이 롯데마트)
다섯째 날(1/23) : 체크아웃 및 공항 이동 - 조식(Big Bow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