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하노이 시내 탐방을 다닌 셋째 날.
둘째 날은 하롱베이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고, 넷째 날은 쿠킹 클래스를 예약해 뒀기 때문에 셋째 날인 오늘은 하노이 시내에서의 시간을 자유롭게, 여유롭게 쓸 수 있었다.
베트남에 왔으니 커피를 안 먹어볼 수 없어 호텔 근처에 눈 여겨봐둔 카페로 향했다.
https://maps.app.goo.gl/xWQmUKcA6jWUcWT16
Vie Coffee & Tea라는 이름의 카페였는데 야외테라스에서 식사하고 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베트남 답게 테이블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테이블이 바깥에 나와 있었다.
주변 다른 카페도 거의 비슷비슷했다.
실내 테이블 역시 위치만 조금 더 안 쪽에 있을 뿐 어차피 문이 없기 때문에 야외 테라스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과거에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프랑스의 테라스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프랑스인들보다도 야외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것이 더 보편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대부분의 로컬식당은 테이블과 의자를 야외에 놓고 운영을 하고, 사람들은 그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재미있었던 건 내부에 테이블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부는 거의 비어있고, 다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메뉴를 살펴보니 내가 고민하던 메뉴 세 가지 (에그커피와 코코넛 커피, 연유 커피) 모두에 MUST TRY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고르기 더 어려워졌다.
우선 하노이에서의 첫 커피인 만큼 가장 유명한 베트남 연유커피, 'VN MILK COFFEE'를 맛보기로 했다.
아이는 코코아를 골랐다.
커피를 주문하자 원두 유리병에서 원두를 꺼내 분쇄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문한 건 한 잔인데 그라인더는 도매에서나 쓸 법한 대용량 사이즈를 사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분쇄된 원두로 무심한 표정으로 정성스럽게(?) 핸드드립을 내려주시는 모습도 바로 옆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커피를 받아 드는데 예상했던 색이 아니었다.
분명 다낭에서 마셨을 때는 믹스커피와 비슷한 갈색이었던 것 같은데 이 커피는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었다.
한 입 마셔보니 맛도 향도 강해서 순간 내가 에스프레소를 잘못 시켰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연유는 잔 바닥에 깔려있었다.
스푼으로 휘휘 저으니 연유가 커피와 섞이면서 우리가 아는 그 믹스커피 색깔이 됐다.
베트남 커피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강렬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커피의 산미도 강렬했고, 진하기도 참 진했다.
연유를 섞으니 거기에 강렬한 단맛까지 더해졌다.
아침의 몽롱한 기분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믹스커피 세 개 정도를 한 잔 분량의 물에 타서 마신다면 비슷한 맛이 나지 않을까.
(실제 우리나라 믹스커피의 원두는 베트남산 로부스타종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다음 목적지인 호치민 묘소를 가기 위해 그랩을 예약했다.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어마어마하게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보니 맞게 잘 왔구나 싶었다.
주변에는 한국 관광버스도 여러 대 보였다.
줄을 서서 보안 검색대로 들어가는데 내 가방이 검색대에 딱 걸려버렸다.
이유는 생수.
생수반입이 불가능하다며 버리고 가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 호치민 묘소를 방문했을 때 같이 다녀온 일행의 민소매 옷차림이 부적절하다고 문제가 되었던 것이 생각나 옷차림에만 신경 썼더니 생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입 밖에 안 마신 생수라 아쉬웠지만 그곳에 두고 검색대를 빠져나왔다.
그 뒤로도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는데 줄에 비해서 대기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치민묘소는 천천히 머물며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가면서 짧은 시간 동안 관람하는 곳이기 때문에 줄이 금방 빠졌다.
줄을 기다리며 아이에게 호치민 묘소를 설명하는데 설명하기가 꽤나 난감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옛 지도자로 방부처리된 그의 시체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고, 우리는 그걸 보러 가는 거라고 하니 처음에는 기겁을 했다.
자기는 죽은 사람을 처음 본다며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방부처리가 되어 있어 우리의 모습과 똑같고, 그냥 잠들어 있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는 나의 설명에 아이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대충 수긍을 했다.
제복을 입은 베트남 경찰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주의를 줬는데 그 삼엄한 분위기도 왠지 모르게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나저나 하얀 제복이 너무나도 멋있었다. 내가 본 제복 중 가장 멋있었던듯하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됐고 오로지 사람들의 숨소리와 발소리만 들리는 그곳을 10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돌아본 후 묘소를 빠져나왔다.
아이가 겁을 먹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아이가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면서 너무 즐거워했다😊
그 뒤로 일본에 돌아와 유치원에 가서는 선생님께 대뜸 앞뒤는 잘라먹고 '베트남에서 시체를 봤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ㅋㅋ
선생님께서 많이 놀라셨을 듯하다.
원래는 묘소 관람을 마치면 박물관에 들렀다가 관저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대기시간까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터라 이미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박물관은 건너뛰고, 이번에는 관저로 향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아이와 함께 호치민 관저에 입장했다.
날이 흐리긴 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호치민의 저택(저택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규모가 있지는 않았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소박한 쪽일지도.)을 둘러보고, 호수도 둘러봤다.
예전에 호치민이 호수 속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박수를 쳐서 잉어들을 불러 모았다고 하길래 나와 아이도 열심히 박수를 쳐봤지만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하긴 우리말고도 호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박수를 치고 있으니 잉어들도 진짜 먹이를 얻어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곳은 호치민의 생전 모습들을 영상으로 담아둔 곳이었다.
호치민의 생애가 연도별로 벽에 기록되어 있었고, 벽 한 켠에서는 호치민의 영상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아이가 끝까지 보고 싶다길래 한 10분 정도짜리 짧은 영상이겠거니 했는데 무려 40분을 서서 영상을 봤다.
보는 내내 '호치민은 왜 이렇게 인기가 많냐', '호치민은 왜 죽었느냐' 등등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죽어서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의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호치민 관저까지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새 평소 점심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미슐랭 맛집 땀비(떰비)로 향했다.
https://maps.app.goo.gl/VTXUGuuBa3R3DZMj6
호치민 관저에서 땀비까지는 도보로 약 25분 정도.
택시를 탈까 망설였지만 아이가 걸으면서 산책을 하고 싶다길래 땀비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나는 하노이 특유의 복작복작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분위기를 정말 좋아한다.
방콕은 좀 더 세련된 도심의 느낌이 나고, 마닐라는 치안 탓인지 두 도시에 비해서는 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나는데 하노이는 방콕처럼 치안이 괜찮다고 느끼면서도 마닐라 같은 날 것의 느낌이 난달까.
그런데도 영유아를 동반하려는 가족이 있다면 추천을 할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그 이유는 바로 도로 사정이다.
길이 제대로 안 닦여 있어 도보가 없는 곳도 많아 차도 한편에 비껴 서서 걸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고, 보도블럭이 있는 곳도 나무의 뿌리가 보도블럭을 뚫고 나와 바닥이 울퉁불퉁했다.
우리 아이는 유모차와 작별한 지도 이미 몇 년이나 되어 전혀 문제없었지만 유모차가 필요한 시기의 아이라면 아마 유모차를 끌다가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불편한 도보마저 베트남스러워서 참 좋았다.
유모차를 끄는 입장이었다면 아마 혀를 찼겠지만^^;
중간에 살짝 길도 헤매고, 가게들을 구경도 하며 한 30분 걸려 땀비에 도착했다.
관광지에서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노이 최초 미슐랭 1스타 맛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예약하지 않고 간 거라 웨이팅이 너무 길면 포기하고 주변 다른 음식점으로 가야겠다 싶었는데 우리가 둘 뿐이라 인원이 적어 그런지 운 좋게도 금방 별관의 2인석 테이블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Pandan Soy Milk(3만동)과 Fried Eggs With Minched Pork(11.5만동), 튀긴 스프링롤(아마 34만동?), 쌀밥(3만동이었던듯)을 주문했다.
판단 소이밀크는 물 탄 두유 같은 맛으로 달달하지만 콩 맛이 별로 안 나고, 뭔가 적응하기 힘든 특이한 맛이었는데 그럼에도 이상하게 손이 갔다.
아이는 한 모금 마셔보더니 단호하게 거부했다.
Eggs With Minched Pork는 동그랑땡과 맛이 비슷해 아이도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었다.
튀긴 스프링롤은 뭐 언제 먹어도 맛있으니까^.^
쌀밥은 정말 한 바가지가 나왔는데(거의 3~4인분 수준) 주문한 음식을 먹기에도 배가 불러 거의 손도 못 댔다.
사실 이곳에서는 다들 동파육과 비슷한 돼지고기요리나 기름을 부어 익히는 생선요리를 많이 주문하지만 우리는 아주 평범한 음식을 주문했다.
남편이 있었더라면 무조건 고기 메뉴를 시켰을 텐데 나는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잘 주문하지 않는 편이고, 생선요리는 행여나 아이가 배탈이 날까 싶어 피한 것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정작 유명한 음식은 다 피해 가고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문하게 됐다.
그래도 맛은 꽤 괜찮았다.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는가를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노이 최초의 미슐랭 맛집에 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양도 꽤 많아서 결국 거의 모든 메뉴를 조금씩 남기고 돌아왔다.
비싼 메인 메뉴를 주문하지 않아서인지 예상보다 훨씬 저렴한 375000동이 나왔다.
다음에 남편과 함께 오게 된다면 그때는 다른 요리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기분 좋은 식사와 계산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들르려는데 두둥...
화장실 문이 잠기지 않는다^^;
걸쇠가 없는 화장실은 사실 이곳뿐만은 아니었다.
공항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공시설의 화장실에서는 문을 잠그는 걸쇠가 고장이 나 있거나 아예 문짝이 떨어져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역시 문화충격...ㅋㅋㅋ
아무리 급해도(?) 문짝이 없는 곳은 차마 도전이 불가했고, 급한 대로 걸쇠는 없지만 문이 온전하게 달려있는 칸에 들어가 아이에게 문을 잡고 있게 했다.
설마 미슐랭 맛집까지 잠금장치가 고장 났을 줄이야...
돈도 많이 버실 텐데 제발 화장실 문 좀 고쳐주세요 ㅠㅠ
아무튼 땀비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인테리어 역시 베트남 특유의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잘 살려냈는데 이 가게 분위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방문해 볼 만하겠다 싶었다.
이곳저곳 방향을 바꿔 열심히 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를 본 직원이 우리 둘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가게 문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우리 뒤에서 나가려는 손님을 막으며 기다리라고 하고는 각도를 바꿔가며 열심히 사진을 남겨주셨다🤣
그 덕분에 모처럼 우리 둘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친절함에 감동감동!
점심식사를 배불리 마친 우리는 이번에는 탕롱황성으로 향했다.
🔽 베트남 하노이 여행기 모아보기
[일정]
첫째 날(1/19) : 오후 7시경 노이하이 공항 도착 - 공항에서 간식(파파이스) - 호텔로 이동 및 체크인
둘째 날(1/20) : 하롱베이 투어 - 저녁식사(THU HUYEN)
셋째 날(1/21) : 카페(Vie Coffee & Tea) - 호치민묘소 - 호치민관저 - 점심식사(땀비) - 탕롱황성 - 기찻길 옆 카페 - 마사지(Kadupul Spa Massage) - 저녁식사(BANH MI LONG HOI) - 호안끼엠호수 산책
넷째 날(1/22) : 카페(Vie Coffee & Tea) - 쿠킹스쿨(하노이 로즈 키친 쿠킹 클래스) - 호텔에서 휴식 - 저녁식사(롯데리아) - 쇼핑(하노이 롯데마트)
다섯째 날(1/23) : 체크아웃 및 공항 이동 - 조식(Big Bow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