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가면 가보고 싶었던 곳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잠실새내(구 신천)쪽 매운 냉면의 원조로 유명한 해주냉면과 다른 하나는 선정릉역 쪽 마그마커피 로스터리 카페였다.
오전 항공편으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전날 밤 집에서 30분, 버스와 비행기 안에서 잔 수면시간을 합쳐도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던 터라 피로가 상당했다.
순간 그냥 집으로 가서 잘까 싶었지만 가고 싶은 두 곳 다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는 힘든 곳이라 특별한 일정이 없는 오늘 가족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바닥난 체력을 맛집투어를 하고 말겠다는 정신력으로 재무장시킨 후, 공항에 마중 온 가족들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나 홀로 잠실행 버스를 탔다.
'아이 손잡고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블로그 글을 쓰는 입장에서 어쩐지 아이의 손을 놓고 혼자 여행한다는 게 좀 양심에 찔렸다.
그렇지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건 가족들이 있는 한국에서 밖에 없는 찬스이기 때문에 뻔뻔하게 누리기로 했다.
https://maps.app.goo.gl/SnS3LNe8J7DQ8yfp9
잠실 해주냉면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쯤이었다.
주말에는 줄은 길게 선다고 하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평일에다가 점심시간을 살짝 비껴간 시간대라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메뉴는 심플했다.
비냉과 물냉이 각 8천 원이고, 사리를 2천 원에 추가할 수 있었다.
이곳은 매운 비빔냉면이 유명한 집이라 꼭 비냉으로 시키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방문 전 여러 후기들을 보니 '엄청나게 맵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요즘 몸 사리느라 매운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던 나는 비냉을 최대한 덜 맵게 먹기로 했다.
사리 추가 없이 일반 비냉 하나를 시켰는데 양념을 적게 넣어 덜 맵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육수도 넣을 거냐고 물어보시길래 냉큼 넣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주변을 봐도, 새로 들어온 손님들이 주문하는 걸 봐도 다들 그 맵다는 비냉을 오리지널로 턱턱 시켰다.
용기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웠지만 나는 내 위장을 지키기로 했다.
무김치와 물, 가위가 셀프라 챙겨 오는 1분 사이에 음식이 이미 나와 있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스피드!!!
내 냉면은 양념도 적고, 물냉면 냉육수도 조금 들어가 있는 상태라 겉으로 보기엔 별로 매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몇 입 들어가고 나니 입 안이 얼얼하고,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소문대로였다.
나는 평소에 불닭볶음면과 동대문 엽기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음식들은 '맵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맛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맵다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매락으로 일본에서도 '극한의 매운맛' 등을 내건 음식점들은 가지 않는다.
나는 매운맛의 한계에 도전하기보다는 적당히 매운 것을 맛있게 먹는 걸 선호한다.
물론 이제는 위장의 노화로 몸을 사리는 맵찔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해주 냉면은 소문대로 정말 '맛있는 매운맛'이었다.
인공적으로 맵기를 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재료들이 맛있게 매운맛을 내는 느낌이랄까?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싹싹 비웠다.
다음 날 배탈을 각오하고 숟가락으로 남은 양념 육수까지 퍼먹었다.
셀프코너 한쪽에 있는 뜨거운 육수까지 가져다 마시니 천국이었다.
한 잔을 다 마시고 커피 리필하듯 한 잔을 더 가져와 천천히 음미하면서 홀짝였다.
육수가 입 안에 남아있는 매운맛을 씻어내주었다.
내가 식사하는 20분 사이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역시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해주 냉면은 맛있는 녀석들과 전지적 참견시점 같은 인기 방송에도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전부터 이미 잠실 토박이들이나 냉면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세 시간밖에 못 자 피곤했던 내가 제정신을 찾을 만큼 알싸한 매운맛이었지만 오늘 일정을 포기하지 않고 이곳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배탈을 각오하고서라도 또 찾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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