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
어느덧 12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12월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잊고자 외면했었던 생각들이 불쑥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를 이렇듯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것 2위는 나이.
다음 달이 되어도 여전히 만 나이로는 35살일 테지만 관성적으로 1월 1일이 되면 37살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별로다.
36살까지는 30대 중반으로 뭉뚱그려 퉁칠 수 있을 것 같은데 37살은 이젠 마흔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갑자기 훅 늙은 것만 같아 왠지 억울한 기분이다.
(만 나이가 빨리 자리 잡으면 좋겠다.)
대망의 1위는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즉, 반성의 시간.
매년 12월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보면 반성의 주제는 늘 하나로 귀결된다.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지 않은 것'.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간단하게나마 목표를 세우고(물론 실천은 별개다!), 그 목표를 적어도 첫 한 두 달은 의식정도는 하고 살았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육아를 핑계로 목표 자체도 세우지 않았고, 되는 대로 급한 불만 끄며 살았다.
퇴사 후에는 물리적인 시간은 늘어났는데도 오히려 회사 다닐 때보다 하루가 짧게 느껴졌다.
2년 전부터는 드라마, 올해부터는 웹툰을 보기 시작하면서 시간을 펑펑 써댔기 때문이다.
('물 쓰듯 펑펑 쓴다'는 표현을 썼다가 지웠다. 물도 이렇게까진 안 쓸 것 같기 때문이다.)
하나에 빠지면 질릴 때까지 끝장을 보는 성격이 한 몫했다. (생산적인 일에 빠지면 좋으련만...)
그전까지는 드라마는 1년에 한 두 편 볼까 말까였고, 웹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두 유흥 콤비의 쉴 새 없는 어퍼컷에 시간이 맥을 못 춘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연간 80권 정도를 유지하던 독서량이 20권으로 뚝 떨어졌다.
회사일이 바쁘던 시절에도 40권 정도는 읽었었는데.
이제는 취미를 독서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태생적으로 잠이 많은 나는 퇴사 후에 낮잠도 실컷 잤다.
가끔은 신생아로 돌아간 것 마냥 낮잠을 두세 번씩 자기도 했다.
그래도 회사+육아 콤보 시절에는 한 번 감기에 걸리면 2주씩 갔었는데 지금은 이틀 정도면 뚝 떨어지니 낮잠의 일부는 나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로 변명해 본다.
올해 다이어리를 쭉 넘겨보면 매일이 이런저런 스케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내 스케줄은 별로 없다.
아이의 학원 일정과 아이와의 외출 및 여행 일정이 주를 이루고, 내 일정은 약간의 일과 취미정도?
분명 나의 다이어리인데 내 일정이 적혀있지 않다는 것은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계획 없이,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올해 남은 날들,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알차게 그리고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안 써서 굳어버린 머리가 더 굳어버리기 전에 새로운 것도 배워야겠다.
매달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에 회비는 꼬박꼬박 내놓고 얼굴은 비추지 않는, 자칭 스포츠계의 기부천사 생활도 이제 청산해야겠다.
2024년 12월에는 싱숭생숭한 마음보다 뿌듯한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보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