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대한 단상
1.
엄마가 카페에 간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묻는다.
"어느 카페 가? 거기 어때?"
내가 카페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이렇게 묻는다.
"누구랑 가?"
엄마는 주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에 가고, 나는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에 간다.
그래서 이렇게 같은 행동에도 서로를 향한 질문이 다르다.
'그 카페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는 많은 걸 함축하고 있다.
매장이 넓은지. (좁으면 눈치가 보여 금방 마시고 나와야 한다.)
커피는 맛있는지. (이왕이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
사람이 많은지. (조용한 곳을 선호하기 때문에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손님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
엄마는 내가 당연히 혼자 간다고 대답하면 알겠다고 하면서도 늘 의아해하는 눈치다.
급한 성질머리는 똑 닮은 우리 모녀지만 우리의 엇갈리는 질문은 핵인싸인 우리 엄마와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인 나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2.
나에게는 좋은 커피를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커피를 마신 뒤 내 몸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신선한 커피는 마시고 나서도 뒤탈 없이 깔끔한 반면, 오래된 원두로 내린 커피나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나면 속이 불편하거나 숙취를 겪을 때처럼 머리가 아프다.
비록 몸빵(?)으로 내 한 몸 희생해야 구별할 수 있지만 내 몸을 통해 자체 인증을 받은 '맛있는 커피'들이 계속 늘어나는 건 기쁜 일이다.
3.
며칠 전, 친정집 근처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산미가 적고, 고소한 맛이 많이 나는 커피'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가을'이라는 이름의 블렌드 커피를 추천해 주셨다.
브라질 원두가 메인이었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한창 책을 읽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바쁘신 와중에 내 테이블까지 직접 오셔서 커피 맛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그리고 내가 산미가 적은 커피를 찾았던 게 신경 쓰이셨는지 사람들이 보통 '시다'고 느끼는 커피는 로스팅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이셨다.
덜 익은 사과에서 신 맛이 많이 나는 것처럼 로스팅이 덜 되면 신 맛이 나는 거라고 하셨는데, 이건 커피 원두 고유의 산미와는 다르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래도 이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4.
나는 카페인이 굉장히 잘 듣는 체질이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약물의 효과 비스무리한 게 난다. (물론 해 본 적은 없지만 글을 마저 읽는다면 내가 왜 이렇게 표현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카페인이 들어가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데,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실 경우에는 다 마실 때즈음 손을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친다! (이게 포인트)
이 상태로 일을 하게 되면 효율이 엄청 높아지는데 평소 1시간은 걸릴 일이 20분 정도면 끝난다.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블럭처럼 차곡차곡, 가장 효율적인 순서로 정리되어 쌓이는 느낌이다.
그 순서에 따라 하나씩 클리어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일이 끝나있다.
마찬가지로 카페인의 힘을 빌어 요리를 하게 되면 머릿속에서 레시피 순서가 딱딱 정리된다.
그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두세 가지 요리를 동시에 만들면서 중간중간 설거지까지 마치는 기염을 토해낸다.
친구들한테는 '카페인이 내 몸을 빌려 나 대신 일하고, 나 대신 집안일을 해주는 것 같다'라고 얘기하곤 한다.
그런 와중에 생기가 넘치고, 기분은 좋은 상태가 쭉 유지되며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때만큼은 성선설이 진리인 것 같고, 앞으로 펼쳐질 내 미래는 장밋빛 같다.
(그래서 이때 갑자기 인생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러다 약빨, 일명 카페인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급 피로를 느낀다.
카페인빨을 빌어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빠르게 처리했기 때문인데 특히 에너지를 과하게 쓴 날은 다음날까지 계속 피곤하다...
친구들이 이 정도면 커피를 끊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여전히 끊을 생각이 없는 나는 오늘도 손을 떨며(?)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