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둘째 날(1) : 신천지에서 오전 산책 (상하이 임시정부, 胖子面, 티엔즈팡)
둘째 날 오전 일정은 신천지 산책.
첫 목적지는 상하이에 오면 꼭 들르고 싶었던 상하이 임시정부였다.
https://maps.app.goo.gl/xtPMso3e4K8SPMFr8
사실 아이가 아직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이 일정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그렇지만 아이 때문에 임시정부 방문을 접는다면 내가 너무 아쉬울 것 같아 티엔즈팡을 끼워 넣어 신천지 산책 일정을 완성했다.
근현대사를 공부했던 고등학생 시절도 벌써 이십여 년 전이니 상하이로 떠나기 전, 상하이 임시정부에 대한 다큐와 책(백비; 비석에 새기 못한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라는 책이다.)을 보고 갔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가면 더 많은 게 보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임시정부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편에 매표소가 있었고, 성인은 20위안, 학생은 10위안에 아이는 무료였다.
임시정부의 입구는 까딱하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소박했다.
대한민국의 첫걸음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임시정부가 이렇게 작고 소박한 모습이라니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들다가도 타국에서 일본군들의 박해를 피해 중국인들 사이에 섞여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단출한 생활상이 안전했겠다 싶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했다.
실내 구조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는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고, 자료실에서는 임시정부 수립까지의 과정과 수립 후의 펼친 활동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며 문득《백비》라는 책에서 읽은 우당 이회영 선생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일본군의 편에 서서 재물을 모으고 득세를 했지만 이회영 선생께서는 명문가로 대대손손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처분해 독립운동에 바치셨다고 하는데 급히 처분한 그 재산의 현재가치가 무려 6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회영 선생뿐만 아니라 우당 6형제 모두가 뜻을 모아 독립운동에 가담하셨다고 하는데 심지어 둘째 형인 이석영 선생은 현 시가로 수조 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에 바쳤지만 정작 자신은 상해 빈민가에서 아사하셨다고 한다.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다.
이것저것 물어오는 아이에게 일제 치하 속 대한민국의 모습과 임시정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완벽하게는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부자 나라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건 이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에는 기부금을 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예전에 임시정부 주변을 재개발하면서 임시정부 역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부탁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임시정부를 찾기를 바라며, 내 아이가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무사히 보전되어 다시 찾아올 날을 기대하며 큰 금액은 아니지만 마음을 담아 기부를 하고 나왔다.
임시정부에서 나와 티엔즈팡으로 향했다.
마침 12시쯤이라 점심시간이었는데 음식점을 미리 찾아두지 않은 터라 지나가다 괜찮은 곳이 있으면 들르기로 했다.
적당히 꾀죄죄(?)한 로컬맛집을 가고 싶었다.
중국요리가 아니라서, 가격이 비싸서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몇 군데를 지나치다가 마침내 딱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찾았다.
胖子面이라는 가게였는데 손님이 듬성듬성 있던 다른 가게들과 달리 사람들이 거의 꽉 차 있었고, 밖에서 보이는 메뉴판 역시 외국어 하나 없이 로컬스러웠다.
가격도 적당해 보였다.
https://maps.app.goo.gl/pJ5VL2m9fKuLtnrG7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보다도 더 로컬스러웠다.
카운터에는 할머니가 계셨고, 일하시는 다른 분들도 우리 부모님보다 연세가 더 많아 보이셨다.
중국어를 못하는 내가 영어로 얘기하자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영어가 전혀 안 통하길래 이번에는 번역기를 돌리려는데 중국이라 그런지 구글 번역이 잘 듣지 않았다.
파파고라도 미리 받아둘걸.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그냥 포기하고 나갈까 망설이던 그때, 손님 중 한 아저씨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우육면을 드시고 계시던 아저씨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우육면 빼고 다른 메뉴는 전혀 모르는 우리를 위해 아저씨는 스무고개를 하듯 질의응답을 통해 우리의 취향을 캐내셨다.
소 or 돼지고기, 국물 있는 거 or 국물 없는 거, 매운 거 or 안 매운 거, 내장 든 거 or 내장 안 든 거, 기름기 많은 거 or 적은 거 등등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소고기 살코기 위주에, 내장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으로 약간 매워도 되지만 엄청 맵지는 않은 것으로, 아이는 돼지고기가 들어가고 맵지 않은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결제까지 마치고 아저씨에게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드리는데 상당히 쿨하셨다.
고개 한 번 끄덕이시고는 마저 식사하시더니 휙 나가셨다.
역시 츤데레한 중국인들😆
내돈내산이지만 도대체 뭐가 주문된 건지는 모르니 더 설렜다.
잠시 뒤에 내 건 살짝 매콤한 우육면 같은 게 나왔고, 아이 건 커다란 미트볼 안에 계란이 들어가 있는 국수가 나왔다.
단골로 보이는 아저씨의 추천이라 그런지 과연 두 개 다 만족스러웠다!
중국의 향신료와 향채를 힘들어하는 나도 싹싹 비웠고, 아이도 미트볼이 맛있다며 호호 불어 신나게 먹었다.
아저씨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다른 가게로 가거나 실패를 감수하고 눈감고 찍기 식으로 메뉴를 고를 뻔했는데.
세상은 아직 우육면처럼 따뜻한 곳인가 보다.
외국인이 신기하신지 자꾸 주변을 맴돌며 힐끔힐끔 쳐다보시던 일하시는 할머니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번에는 티엔즈팡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떡을 파는 전문점이 있길래 그곳에 들러 주전부리용 떡을 구입했다.
종업원이 중국어로 설명을 해주셨지만 전혀 알아듣지 못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중국어로 '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하곤 미소로 화답했다.
나의 한 마디에 그쪽도 내가 중국어를 못한다는 걸 바로 알아채고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포기하셨다😅
맛있어 보이는 떡 한 상자를 골라 계산대에 가져갔는데 1+1이었는지 계산하시다 말고 떡 한 상자를 더 집어오시더니 스캔하셨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 앞에서 상자를 뜯어 떡 하나를 입에 물고 다시 티엔즈팡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찹쌀떡과 비슷해 맛있었다.
떡이 좀 더 투명해서 일본의 와라비모찌랑도 조금 비슷했는데 팥소가 든 게 가장 무난하고 맛있었다.
배는 불렀지만 맛있어서 하나 더 까먹으며 걸었다.
상하이는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많아서 걸어 다니면서 군것질하기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군것질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못 봤음🤣)
티엔즈팡 입구까지는 한참을 헤맸다.
구글 지도대로 따라가다가 평범한 아파트들이 나오길래 다시 돌아나가려다가 철창문 한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하곤 그리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반대편에는 정식으로 티엔즈팡이라고 크게 써 붙어있었는데 우리가 들어간 입구는 개구멍 같은 곳이었던 것 같다.
https://maps.app.goo.gl/ZRDud3KGGpkPqVMH7
티엔즈팡은 상해에 여러 번 다녀왔던 동생이 강력추천해서 일정에 넣은 곳이다.
차를 마시기도 좋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잡화들이 많이 있어 구경하기 좋다고 했다.
사실 나는 여기서 차를 마실 생각도 없었고, 짐이 될 법한 잡화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던 터라 한 시간 정도 가볍게 머물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계획이 무색하게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야외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함께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서양인 커플을 보니 나도 이끌리듯 그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커피 전문점이라 아이에겐 줄만한 게 없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얼른 마시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내 커피와 함께 따뜻한 우유를 내오시더니 아이에게 주셨다.
깜짝 선물을 받은 아이와 나는 연신 '쎼쎼'를 외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커피는 내 취향이었지만 살짝 미지근했다.
마신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의 온도 정도?
평소에도 라면을 끓여 먹다가도 중간에 식으면 다시 냄비를 뜨겁게 덥혀먹는 나로서는 좀 아쉬웠지만 맛은 좋았다.
한창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저씨가 내 앞자리에 와서 앉으셨다.
그러고는 차를 내리기 시작하는데 진정한 상남자식 다도를 보여주셨다.
옆에 차 스푼이 있었지만 찻잎을 맨손으로 푹 퍼서 내린 첫 찻물은 쿨하게 바닥에 버리고, 두 번째 찻물을 찻잔에 따라 우리와 옆 테이블 서양인 커플에게 나눠주셨다.
그리고 본인도 연거푸 두어 잔 드셨다.
맛은 녹차 같은 쌉싸름한 맛이었다.
졸지에 아저씨와 합석하고 같이 차도 마시는 상황이 웃겼다.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는 이 찻잎도 판매하고 있다며 중국어로 된 설명을 번역기에 돌려 보여주셨다.
이름은 잊었지만 영국의 왕실에서 마시는 차라는 것, 가난한 티베트사람들이 채소를 살 돈이 없어 그 대신 이 차를 통해 영양을 섭취했다는 게 기억이 난다.
뱃살 빼는 데에도 좋다는 말에 솔깃하긴 했지만 유통기한이 가까워진 채 마시지 않고 있던 녹차가 생각나 구입은 관뒀다.
아저씨는 차를 리필까지 해주고는 쿨하게 퇴장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자기 동생이 투어 가이드라면서 가이드가 필요하면 이곳으로 연락을 달라고 명함을 줬다.
빽빽하게 일정을 짜온 내가 가이드를 부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일단 한 장 받아뒀다.
아저씨는 다시 쿨하게 퇴장했다.
머그컵 바닥이 보일 때쯤 되자 나는 슬슬 다시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다시 등장하시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아저씨는 각도를 바꿔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잘 가라며 다시 쿨하게 퇴장하셨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사는 나는 한국에 가면 종종 만나게 되는 불친절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놀랄 때가 많은데(물론 우리나라에도 친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상하이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또 새로웠다.
그들은 잘 웃지 않고, 무뚝뚝하지만 나의 요구를 철저하게 들어줬다.
심지어 어제 만난 택시기사도 말이 안 통한다고 큰 소리를 내며 짜증 내는 와중에도 정확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중간중간 창문을 내려 길을 묻던 모습만 봐도 그렇다.
진정한 츤데레다.
카페아저씨 역시 쿨하게 영업하고, 쿨하게 고객서비스를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카페에서 나와 이번에는 기념품가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찻잎을 파는 곳들과 개성 있는 예술품, 의류 등을 판매하는 다양한 가게들이 촘촘하게 줄지어 있었다.
https://maps.app.goo.gl/papoMC1j419sA1en7
그러다가 우연히 한 잡화점에 들어가게 됐고, 우리는 그곳에서 30분을 보냈다.
그냥 깔끔해 보이길래 잠깐 들어갔던 거였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엽서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도 홀린 듯이 손거울 앞으로 가 구경하기 시작했다.
엽서를 구경한 뒤 다이어리를 보고, 스티커를 보다가 책갈피를 고르는 나를 보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여기서 지갑을 열겠구나🤣
주변에 더 예쁜 잡화점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른 곳도 구경해보자 싶어 일단 나왔지만 한 5분 둘러보다가 결국 다시 이 가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평소라면 결코 사지 않을 법한《상해인상》이라는 이름의 일러스트북을, 아이는 중국풍 일러스트가 들어간 손거울과 곰인형을 샀다.
곰인형은 중국의 다양한 성씨가 쓰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자신의 성씨에 맞춰 인형을 고를 수 있었다.
아이의 이름에 맞는 한자는 없었지만 내 성씨는 중국에서도 많이 쓰이는 성이라 점원에게 한자를 보여주며 물어봤더니 커다란 비닐봉지를 뒤적여 내 이름과 똑같은 한자가 쓰인 곰돌이 꺼내주었다.
곰인형을 건네받은 아이는 기뻐하며 엄마의 이름이 쓰여있으니 곰인형을 엄마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겠다는 제법 기특한 약속을 했다.
나도 아이도 구입한 물건들을 소중히 끌어안고 나왔다.
티엔즈팡에서 보내려고 했던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잡화점을 나섰을 땐 이미 체류시간 1시간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 일정인 마시청 서커스장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할 생각이라 시간을 넉넉히 잡아두었지만 티엔즈팡에서 예상보다 더 길게 시간을 보낸 우리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일정]
첫째 날(3/22) : 오후 3시경 푸동공항 도착 - 호텔로 이동 및 체크인 - 저녁식사(맥도날드) - 황푸강 유람선 탑승 - 와이탄 산책
둘째 날(3/23) : 상하이 임시정부 - 점심(胖子面) - 티엔즈팡 - 마시청 서커스 - 저녁식사(하이디라오) - 난징동루 산책 - 예원
셋째 날(3/24) : 오전 휴식 - 점심(스타벅스 상하이 로스터리) - 푸동미술관 - 매너커피 - 저녁(헌지우이치엔) - 난징동루 산책&쇼핑
넷째 날(3/25) : 디즈니랜드 - 저녁(하이디라오) - 난징동루 산책&쇼핑
다섯째 날(3/26) : 체크아웃 및 공항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