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나의 노력 : '놓아버리기'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라 그런지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도 많이 바뀌었다.
최근 들어 특히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주제는 단연 '건강'이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질환에 대해 얘기를 나눌 일이 많아졌는데 이럴 때마다 본인의 경험담은 물론, 주변 지인들의 사례, 인터넷에서 본 사례들을 망라해 정보를 공유한다. (처음 들어보는 질환들이 정말 많다!)
이를 대비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종종 얘기하곤 하는데 결론은 늘 '스트레스 관리 잘하자!'로 끝난다.
만병의 근원인 동시에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스트레스'가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는 식습관과 운동처럼 가시적이지 않고,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즉,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늘려야지.', '저녁식사 후 30분 동안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해야지.'와 같은 목표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지.'하고 결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놓아버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진행된다면 참 좋겠지만 실제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 부조화에서 필연적으로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동반하는 적당한 스트레스는 도움이 된다. ('적당한'이 중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추천하는 '놓아버리기'는 불가항력적인 원인에 대해 놓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은 놓아버리자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날씨는 가장 불가항력적인 부분이다.
나와 아이는 주로 자전거로 이동을 하는데 분명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는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지만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질 때가 있다.
옷이 젖기 시작하면 짜증이 난다.
오늘 막 빨래를 하고 나온지라 이틀 뒤에나 세탁기를 돌릴 생각이었는데 오늘 한 번 더 빨래를 해야 한다.
비에 젖은 빨래를 이틀 동안 방치해 두면 분명 꿉꿉한 냄새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젖은 운동화 세탁도 너무 귀찮다.
오늘은 당장 세제를 풀어 물에 담가 놓는다고 해도 내일은 솔로 빡빡 문질러 세탁을 하고, 잘 말려야 한다.
그마저도 비가 그치지 않고 습도 높은 날씨가 계속된다면 운동화는 잘 마르지도 않고 심지어 걸레 냄새가 날 수도 있다.
거기다가 집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저녁을 만들 계획이었는데 당장 아이와 욕실로 직행해 씻고, 씻겨야 한다. 계획이 모두 어그러진다.
이 모든 일련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짜증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상황들이 떠오르기 전에 의식적으로 놓아버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내가 멈출 순 없다.
장대비가 쏟아져 이미 쫄딱 젖어버린 상황은 내가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이 상황에 몰입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에 생각을 바꾸고 다른 행동을 한다.
우선 비에 쫄딱 젖은 아이를 밖에서 더 놀린다.
아이는 나와 달리 그저 비 맞으며 뛰어노는 걸 즐거워하기 때문에 1년에 몇 번 없는 우산 없이 비 맞으며 밖에서 노는 날을 만끽한다.
평소에는 잔소리 듣기 일쑤인 물 웅덩이에서 첨벙첨벙 점프하기도 이날만큼은 맘껏 할 수 있다.
아이도 열심히 체력을 소모하고 목욕을 마치면 평소보다 더 일찍 잠에 들지도 모른다.
(이만큼 행운인 게 없다ㅋㅋ)
빨래에 대해서도 잘 생각해 보면 빨래는 내가 아니라 세탁기가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먼 옛날처럼 냇가에서 손빨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세탁기가 빨아주면 나는 널기만 하면 된다. (내 손은 거들뿐!)
오늘 이미 빨래를 한 번 했기 때문에 널어야 할 세탁물도 많지 않아 금방 끝날 것이다.
운동화 손세탁은 좀 귀찮은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운동화는 옷에 비해 자주 세탁하지 않는다.
그냥 세탁할 타이밍이라고 온 거라고 생각하면 속 편하다.
그래도 역시 귀찮다면 그냥 세탁소에 맡긴다.
(몇 천 원으로 얻을 수 있는 정신건강)
저녁식사는 힘을 빼고 대충 때우기로 한다.
짜파게티를 끓인다.
아이도 내가 손수 만드는 밥보다 짜파게티를 더 맛있어한다🤣
매일 주는 것도 아닌데 하루정도는 뭐.
왠지 죄책감이 든다면 냉동고에 넣어 둔 다진 야채를 꺼내 남은 밥과 굴소스를 넣고 잽싸게 볶는다.
계란 한두 개 넣고 휘저으면 나름 중화요리풍 볶음밥이 된다.
아니면 볶음밥 위에 계란프라이를 올린 뒤 케첩을 뿌리고 오므라이스라고 우긴다.
이마저도 귀찮으면 배달시킨다.
예시로 날씨 얘기를 했지만 이렇게 불가항력으로 일어난 일을 체념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꽤 많다.
예를 들어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내가 아무리 잘 관리를 했어도 언젠가 일어날 일이다.
이건 내가 컴퓨터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애원해도 컴퓨터는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고칠지, 업체를 부를지, 아니면 이 참에 새로운 컴퓨터를 구입할지 정하면 된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는 해보지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물건은 내 손을 이미 떠났다.
감기에 제대로 걸려 출근을 못 하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다.
회사에 얘기하는 게 눈치가 좀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출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감기가 낫는 것도 아니다.
하루 정도 집안일도 회사일도 손 놓고, 그동안 못 자둔 잠을 자두기에 좋다.
(하루 정도 집안일을 놓는다고 큰일이 나지 않고, 회사는 나 없어도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특히 본투비 예민한 성격의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들까지도 다 끌어안으며 살던 때가 있었지만 끌어안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얻은 건 피폐해진 정신건강과 원인 모를 짜증과 두통이었다.
얼마 전, 태국을 다녀왔는데 마침 우기 시즌이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열대성 호우, 스콜이 쏟아졌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편의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릴 정도로 엄청난 기세로 내렸는데 이 상황을 걱정하는 건 우리뿐이었다.
현지인들은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비를 맞으며 하던 일을 했다.
비가 새는 천장 밑에 양동이를 가져다 놓을 뿐이었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탓에 1분도 안 돼 빗물이 양동이 밖으로 흘러넘쳤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놓고 산다면 마음이 편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놓아버리고 받아들이면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있다.
인생에는 변수가 참 많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날이 또 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도록 해야겠다.